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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훑어보기

04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by 꼬북11 2023.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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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먼저 문명이 싹튼 곳은 어디일까요?

 

기원전 3500년경 서아시아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땅은 메소(중간, 사이)+포탐(강)가 합쳐져 ‘두 강 사이의 땅’을 의미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라고 부릅니다. 현재의 이라크 대부분과 시리아, 쿠웨이트, 터키, 이란의 일부지역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지역은 곁에 두 강이 있어 농사에 필요한 물을 구하기 쉽고 토지가 비옥했어요. 땅 모양이 초승달이어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불리는 이 땅에 일찍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농사 짓고 살게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모여 살다보면 마을이 되고, 마을이 점점 커져 국가가 되었죠. 그렇게 문명의 단계로 성큼 들어가게 됩니다.

정말 초승달 모양으로 보이나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가장 먼저 문명을 건설한 똑똑한 사람들은 수메르 인이었어요. 수메르 인 이전에도 이 지역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수메르인처럼 문명을 건설하지는 못했죠. 수메르인들은 강물이 넘치는 걸 막기 위해 저수지를 만들고, 강물이 메마르면 물길을 만들어 멀리 떨어진 땅까지 물을 대 농사를 지었어요. 홍수를 일으키는 건 신의 뜻이었기에 수메르인들은 신전을 지어 신에게 제사를 지냈어요. 이 신전을 지구라트라고 합니다. 수메르인들은 자기들만의 문자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종이나 펜이 없었으니. 점토 위에 갈대나 금속으로 글자를 새겼는데 쐐기 모양이라고 해서 ‘쐐기 문자’라고 불러요.

지구라트(신전)과 쐐기문자

 

그런데,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주변에 산이나 바다, 사막 등이 없는 탁 트인 개방적인 지형이었어요. 당연히, 여러 민족이 이곳에 들어와 도시 국가를 건설해 다투었기에 한 국가가 오래 유지되기는 어려웠습니다. 아카드, 우르, 키시 등 여러 국가가 세력을 키우다 사라지고 또 세력을 키우고... 바빌론 사람들이 세운 바빌로니아 왕국이 등장합니다. 

 

함무라비 법전(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태양신에게 막대기와 반지(왕권의 상징)를 받는 함무라비 왕

 

바빌로니아 왕국에서 우리는 함무라비 왕을 기억해야 합니다. 함무라비 왕은 메소포타미아의 작은 도시들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이 지역을 통일하고 거대한 왕국을 이뤘어요. 넓은 땅을 통치하기 위해 함무라비는 법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커다란 돌기둥에 쐐기 문자로 새겨 적은 함무라비 법전(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많은 내용이 꼼꼼히 담겨 있는데, 철저한 복수주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이 담겨 있어요. 사실, 함무라비 왕은 법전 때문에 다른 업적들이 묻혀버린 왕입니다. 법전 편찬 뿐만 아니라 운하 건설, 역법과 종교질서 정비, 관료제 확립 등 왕으로서 해야할 국가 통치의 본을 보인 왕이라고 해요. 그러나, 함무라비 왕이 죽은 후 바빌로니아 왕국은 여러 민족의 침입으로 쇠퇴하다가 기원전 1500년경 서쪽에서 철기를 들고 침략한 히타이트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히타이트소아시아(지금의 튀르키예 땅)에서 성장한 이들로, 철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역사상 최초의 민족이었습니다. 청동기를 사용하던 사람들에게 히타이트가 지닌 단단하고 날카로운 철제 무기와 전차는 큰 위협이 되었죠. 히타이트를 통해 세계 역사가 청동기에서 철기 문화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기원전 20세기 경 시작되어 기원전 15세기 경에 전성기를 누리게 된 히타이트, 그러나 기원전 1180년경 갑자기 멸망합니다. 히타이트의 멸망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에 여러 학설이 존재하는데, 미지의 해양세력에 의해 타격을 입었다고 보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모두가 탐내는 고대 문명,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가까운 나일 강 유역에서는 이집트 문명이 생겨났습니다. 나일 강은 일정한 시기마다 홍수로 흘러넘쳐 주변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어요. 당연히 이곳에 사람들이 몰려 농경이 발달하고 도시 국가가 세워지며 기원전 3000년 경에는 여러 도시 국가를 통합한 통일 왕국이 세워집니다. 게다가 이 지역은 메소포타미아 지역과는 달리 위로는 지중해, 아래로는 사하라 사막에 의해 막힌 폐쇄적 지형이었어요. 당연히 메소포타미아 지역보다 외부의 침입이 적었고 오랫동안 통일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어요.

 

이집트 통일 왕국의 왕은 파라오라 불렸습니다. 무려 '태양신의 아들'이라 여겨지며 정치와 종교를 모두 장악하고 절대 권력을 누렸죠. 신권 정치, 즉 신에게서 권력을 받아 정치를 한 거죠. 파라오는 죽으면 피라미드라는 거대한 무덤에 묻혔습니다.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돌을 쌓아 만들어진 피라미드는 돌 하나의 무게가 2.5톤. 코끼리 한 마리 무게와 맞먹습니다. 이런 돌을 수십층 쌓아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야 했을까요. 이집트에서 가장 거대한 피라미드 중 하나인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20년 간 10만 명이 동원되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피라미드 앞에는 무덤을 지키는 스핑크스가 함께 지어지기도 했어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사진/헤럴드 경제), 피라미드의 크기는 어느 정도?(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그리고 <사자의 서>

 

[더 읽을거리] 스핑크스가 아니라고? - '괴물'이란 뜻의 스핑크스는 외세에 의해 왜곡된 것. 이집트인들에게는 수호신- '지평선에 있는 호루스'라고 불려 왔다고!

 

[新이집트 탐방기②] 스핑크스 틀렸다, 수호신 호루스가 맞다

호루스는 이집트 9신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신들 간의 갈등을 매듭지어 현세를 밝게해주는 국왕신으로, 이집트 6000년 역사 중 이 나라의 리더들이 늘 표방했다. “호루스의 이름으로” 문명을 만

biz.heraldcorp.com

 

폐쇄적 지형에서 안정된 삶을 누렸던 이집트인들은 현실에서의 고민이 없으니... 죽으면 내가 어떻게 될지까지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육신은 죽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영혼불멸'과 죽음 후의 세상- '내세'를 믿게 되었죠. 영혼은 죽지 않고 주변을 떠돌아 다니다 다시 육체를 찾을 수 있으니 육체를 썩지 않게 보관해야 했어요.. 그래서 미라를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을 위한 사후 세계 안내서인 <사자의 서>도 함께 묻었어요.

 

이집트인들 역시 문자를 만들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드이 사용한 문자는 사물의 모양을 본떠 뜻과 소리를 표시했기에 상형 문자라고 불러요. 이 문자, 해독이 가능할까요?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과정에서 발견된 로제타 석이 이집트 상형 문자 해독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 비석에 이집트 상형 문자, 상형문자의 필기체라 할 수 있는 이집트 민중 문자가 그리스 문자와 나란히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로 비교하며 해독을 할 수 있었던 거죠.  

(왼) 이집트 상형문자 / (오)로제타 석(사진/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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