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거란 전쟁
KBS(웨이브, 넷플릭스) 2023.11.11~(32부작)

고려거란 전쟁은 KBS가 공영방송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대하사극이다. 제작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대하사극은 마니아층이 있지만 섣불리 제작에 나서기 어렵다. '수신료의 가치'를 어필하는 KBS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KBS 역시 대하사극 제작을 쉽게 이어가지 못했다. 2016년 종영한 '장영실' 이후에 2021년 '태종 이방원' 부활 전까지 막대한 제작비 문제 때문에 수년간 대하사극을 제작하지 못했다. 많은 배우들과 대하사극 매니아들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대하사극 부활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리고, 2023년 가을, KBS는 '고려 거란 전쟁'으로 34번째 대하사극을 시작했다. 게다가 넷플릭스로 전세계에 송출되는 첫 대하사극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역사에서 고려와 거란의 충돌은 크게 세 차례로 구분된다.
★ 고려 시대, 거란의 침략
- 1차 침략 : 소손녕의 80만(?) 거란군의 침입 → 서희의 외교담판
- 2차 침략 :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침략 → 양규의 항전
- 3차 침략 : 거란 장수 소배압의 10만 대군 →강감찬의 귀주대첩
이 중, '고려 거란 전쟁'에서는 성종 때 일어난 1차 침입을 제외한 거란의 2,3차 침입을 다룬다. 연도로 치면 1009년(고려 목종 12/현종 즉위년)에서 1019년(고려 현종 10)까지이다. 목종의 실정과 강조의 정변, 현종 즉위와 함께 시작된 드라마 초반의 반응은 좋았다. 시청률은 10%를 넘어섰고 넷플릭스 한국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묵직한 이야기와 빠른 전개, 높은 퀄리티(최신 헐리우드 특수효과!)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논란에 휩싸인 드라마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전개를 두고 잡음이 생긴 건 17, 18회부터이다. 해당 회차에서 강감찬과 대립하던 현종이 울며 말을 타다 낙마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에 대해 시청자들 사이에서 “현종을 중2병 금쪽이로 묘사했다”는 혹평이 나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정왕후의 현종과 김씨에 대한 태도, 김은부 간신화, 지나친 호족 세력 강성화 표현, 원정왕후의 국문 진행, 황제가 신하 혹은 호족의 자택으로 십수명의 군사만을 이끌고 등장하는 모습 등이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역사 드라마가 반드시 역사를 '그대로' 다루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된 해당 회차가 이전 16회까지 잘 이어온 드라마의 결과 너무 이질적이라는데서 시청자들은 불만을 느끼고 있다. 이 문제를 깊이 들어가 보면, 출판된 원작 소설의 분량이 끝났으며(원작 소설 '고려 거란 전쟁-고려의 영웅들'(길승수)는 거란의 2차 침입을 다룬다) KBS가 박민 사장 체제로 바뀌면서 역사적 사료와 원작자의 지침을 무시한 대본으로 인해 방향성을 상실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대하사극이 한순간 퓨전사극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원작 소설을 쓴 길승수 작가
드라마 내용이 원작과 다르고, 역사적 사실과도 다른 내용이 포함돼 있다.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자문도 충분히 받고 극본을 썼어야 했는데, 숙지가 충분히 안 됐다. 대본 작가가 일부러 원작을 피해 자기 작품을 쓰려고 하는 것이 보인다. 원작을 피하려다 보니 그 안에 있는 역사까지 피해서 쓰고 있다. 16회까지는 그래도 원작 테두리에서 있었는데, 17회부터 완전히 자기 작품을 쓰고 있다. 역사 왜곡 우려가 있다.
제작진
드라마를 기획한 전우성 감독은 현종을 주인공으로 한 거란과의 10년 전쟁을 드라마화하겠다는 간략한 기획안을 작성하고 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자료를 검색하던 중 길 작가의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검토하게 되었고, 2022년 상반기에 판권 획득 및 자문 계약을 맺고 드라마의 전쟁 장면 및 전투 장면의 디테일을 소설 ‘고려거란전기’에서 참조했다. 같은 해 하반기, 이정우 작가가 ‘고려거란전쟁’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며 대본 집필에 돌입했는데, 이 작가는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검토한 후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의 방향성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고 원작 소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게 되었다.




결국,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KBS 본사 앞에서는 '고려 거란 전쟁'의 역사 왜곡에 반대하는 시청자들이 트럭 시위를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원작자와 제작진 간의 논쟁이 문제가 아니라 멀쩡히 남아있는 <고려사>의 역사 기록까지 무시하고 왜곡시켜 망가뜨리고 있는 대하사극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결국, 제작진은 설연휴에 본방송을 1주간 결방하며 그 기간을 통해 완성도 높은 작품 제작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하사극 역시 역시 창작물인 만큼 각색과 픽션의 개입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개입과 설정이 보편적인 역사적 상식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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