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무거움. 나는 어느 쪽일까. 유명한만큼의 재미는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고 각기 다른 네 인물- 토마시, 테레자, 프란츠, 사비나 - 을 보며 나와 비슷한 모습을 찾기도, 이해 못하기도... 한 번 읽는 것보다 여러 번 곱씹어 읽을 때 이전과 다른 감정과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고 하는데, 그럴 자신은 딱히 없다. 결국, 삶은 그렇게 무겁게만 살 것도, 가볍게만 살 것도 아니라는 것인가.
물리 실험 시간에 중학생은 과학적 과정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므로 체험으로 가정을 확인해 볼 길이 없고, 따라서 자기 감정에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61쪽)
삶은 한 번 뿐이기에 책임을 질 것도 옳고 그름을 따질 것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산다면 얼마나 편할까? 다른 사람 눈치 보며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될 텐데... 가벼움을 추구하며 살기에 대단한 바람둥이가 된 토마시는 (본인은 신경도 안 쓰지만) 비난받아야 마땅하겠지만 소련의 군사 점령 이후 그의 보인 행보는 그를 다르게 생각하게 만든다.
그때까지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던 모든 것을 털어 버렸을 때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 싶은 욕망. 하지만 프라하의 유리창과 진열장 청소 회사의 싹싹한 여자 사장을 만나자 자신이 내린 결심의 결과가 불현듯 적나라한 실체를 드러냈고, 그래서 그는 거의 공포심을 느꼈다. 그는 이 공포 속에서 새로운 직장의 처음 며칠을 보냈다. 그러나 일단 새로운 삶의 경악스러운 이질감을 극복하자 그는 자신이 길고 긴 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어떤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는 일을 했고 그것이 아름답다 생각했다.(304쪽)
이 소설의 배경은?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1968년 체코에서 있었던 "프라하의 봄"과 이후 소련의 침공을 무대로 전개된다. 저자인 밀란 쿤데라는 체코 사람으로 프라하의 봄에 참여하였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 망명한 후 1984년에 이 소설을 집필하였다. 소설은 1988년 영화화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영화 제목을 '프라하의 봄'으로 바꿔 수입하였다. 이후 부다페스트의 봄, 서울의 봄, 아랍의 봄 등 '봄'은 자유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단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체코, "프라하의 봄"(1968)
체코 슬로바키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영향 속에 강력한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이어 왔다. 체코 슬로바키아 인들은 점차 공산당의 잘못된 경제 정책과 경직된 사회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고 알렉산드르 두부체크가 공산당 제1서기로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며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행동강령으로 발표하고 언론 검열 폐지, 연설의 자유, 이동의 자유, 다당제의 가능성, 시장경제 요소 도입, 서방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 등의 조치를 발표한 두부체크에 호응하여 시민들은 소련을 비판하며 그동안 쌓인 불만을 다양하게 표출하였다. 이를 '프라하의 봄'이라 한다.
소련의 군사 침공(1968.8.20~)
소련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폴란드, 불가리아, 헝가리와 함께 군사 개입을 결정했다. 8월 20일에서 21일로 넘어가는 하루밤 사이 20만 군인과 2천 대의 탱크가 체코 슬로바키아를 침공해 공항과 군부대를 장악했다.(당시 체코 슬로바키아의 인구는 1000만명이었다). 이를 "다뉴브 작전"이라 한다. 체코 슬로바키아 정부는 시민들에게 소련군에 맞서지 말라 당부했지만 분노한 시민들은 분신자살 등의 방식으로 소련 침공에 저항했다. 대표 인물은 1969년 1월에 분신자살한 얀 팔라흐(21세)로, 젊은 이들은 이후 한 달에 한 번씩 분신자살을 해 시민들의 의식을 일깨우고자 하였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소련의 침략에 항거하겠다는 이유보다는, 소련의 침략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 대다수가 보여준 도덕성의 상실에 항거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한편, 소련에 의해 체포된 두부체크는 모스크바로 옮겨졌고 소련의 협박 속에서 자신이 내린 이전 조치들을 철회하는 성명서에 서명한 후 석방되어 체코슬로바키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렇게 프라하의 봄은 막을 내렸고, 두부체크의 후임자인 후사크는 정상화 명목으로 두부체크의 조치들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이후 프라하의 '겨울'은 20년 동안 이어졌다.
벨벳혁명(1989)
소련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바람이 동유럽에도 불어오면서, 체코 슬로바키아에서도 공산 정권에 반발하는 국민들의 총파업과 저항이 확산되었다. 결국, 공산주의 정권이 물러나고 대통령 직선을 통해 바츨라프 하벨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며 40년간 유지된 공산주의 정권은 막을 내렸다. 이 변화는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이 비단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게 진행되었다 하여 '벨벳 혁명' 또는 '비단혁명'이라 불린다.
'책, 드라마,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X역사] 뉘른베르크 재판(독일 국제 전범재판)을 다룬 두 편의 영화 (1) | 2023.09.18 |
---|---|
[역사X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 오스만 제국의 쇠퇴, 후세인-맥마흔 서한, 사이크스-피코 협정, (0) | 2023.04.30 |
[예능X역사] 백종원, 모로코 인 악플테러, 최후의 식민지 서사하라, 폴리사리오 해방전선, 자전거 대장정 (0) | 2023.04.17 |
[역사X드라마] 넷플릭스 시리즈 '황후 엘리자베트' -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 프란츠 황제, 씨씨 황후 (1) | 2023.04.14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들이 전해주는 이야기 : 박찬희, <유혹하는 유물들> (0) | 2023.03.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