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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1) : 디아스포라, 시오니즘, 영국의 이중약속, 분쟁의 씨앗

by 꼬북11 2023.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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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땅은 어디?

 
지중해와 요르단 강 사이의 땅과 그 인근 지역

팔레스타인 지역은 여기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 유대 민족의 지도자인 아브라함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이라고 부르는 이 땅에 정착했다. 유대인들은 가뭄을 피해 이집트로 이주한 동안 아랍 민족에게 빼앗기기도 했지만 여호수아가 전쟁으로 되찾은 후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번성했다. 왕국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어 멸망했으나 이후 재건했고, 결국 로마에 정복된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전쟁을 계속했고 로마는 유대인들을 이 땅에서 쫓아냈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전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다. 로마는 이 땅에 '시리아-팔라이스티나 주'의 이름을 붙였고 이는 '팔레스타인'의 어원이 되었다. 이 땅은 7세기 경 이슬람 세력이 점령했고 11세기, 십자군 전쟁 발발의 배경이 되었으며 16세기부터 (1차대전이 끝나는) 1917년까지는 오스만 제국이 지배했다. 아랍인들은 오스만제국 지배 하에 이 땅에 거주해 왔다. 역사적으로 말하면 이 땅은 4천 년 전에는 유대인이, 2천 년 동안은 아랍인이 지배해 온 것이 맞다. 바로 그 역사가 이 땅을 지금까지 분쟁지역으로 만들고 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이후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며 유대교 규범과 관습을 유지했다. 이를 '디아스포라'라 한다. 유대인들은 2000년 동안 흩어져 살게 되는데, 주로 유럽에 거주했다. 자신의 문화를 중요시했던 유대인들은 유럽의 민족주의 움직임 속에서 미움의 대상이 되었고 반유대주의가 확대되었다.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박해는 점차 심해진다.
- 포그롬(pogrom, 1881) :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로 2세의 암살범이 유대인이라는 가짜뉴스가 돌면서 40년 간 15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했다. '포그롬'이라는 용어는 넓게는 러시아 이외의 소수 민족에 대한 박해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치시대 독일의 유대인 박해(홀로코스트)나 미국에서의 흑인에 대한 박해도 포함된다. 

좌: 러시아 포그롬 / 우: 프랑스 육군 포병대위 드레퓌스

- 드레퓌스 사건(1894) : 프랑스군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는 독일 측에 프랑스의 군사기밀을 넘겼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종신유배형을 선고받고 악마의 섬으로 유배당했다. 드레퓌스는 무죄를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반유대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후 반유대인 시위와 폭동이 계속되었다.
 

시오니즘의 등장

 

이스라엘의 국부, 테오도르 헤르츨과 그의 저서 '유대국가 : 유대인 문제의 현대적 해결 시도'

시오니즘은 '유대인의 고향인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자'는 운동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의 유대인 기자 테오도르 헤르츨이 처음 주창해 체계화했다(1896). 유럽 땅에서는 유대인들이 결코 살 수 없으므로 원래 땅인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자는 것으로, 시온은 예루살렘 성지의 언덕을 일컫는다.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시온주의자 세계대회에서 이 내용을 선언했고 1901년에는 '유대민족기금'을 조성,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사들여 유대인 정착촌을 만들기 시작했다. 테오도르 헤르츨은 유대인에겐 국부지만, 현재 핍박받는 팔레스타인 인들과 주변 아랍인들에는 땅을 빼앗은 원흉이라 할 수 있다.  
 

1차대전 중, 영국의 이중약속

유대인은 시오니즘 운동을, 아랍인은 아랍민족주의 아래 오스만제국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를 세우고자 했던 20세기 초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 시기 영국은 세 개의 협정을 맺는다.

후세인-맥마흔 서한
(1914-1916, 10통의 편지)
밸푸어 선언
(1917)
사이크스-피코 협약
(1916)
영국-아랍민족 간 영국-유대민족 간 영국-프랑스 간
"아랍인들이 영국 편에 서서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운다면 전쟁 종결 후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국가 건설을 지원하겠다."  영국 정부의 이름을 걸고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도록 하겠다.(유대인 자본가 로스차일드 가문이 영국에 전쟁자금 지원)  전쟁 승리 후 오스만제국이 붕괴되면 영국, 프랑스가 아랍 지역을 나눠갖는다.

 

팔레스타인 땅을 두고 유대인과, 아랍인과, 그리고 프랑스와 협상했던 영국(출처 : 1,2-  아! 팔레스타인(원혜진))

 

영국은 같은 땅(팔레스타인)을 두고 아랍인에게는 아랍인의 나라를,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의 나라를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1918년 1차 대전에서 승리한 영국은 두 약속을 모두 무시하고 프랑스와 분할협상을 시작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영국의 보호령, 시리아 지역은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할 총책임자로 유대인 시온주의자를 임명하고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했다. 점차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면서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비율이 높아졌고 아랍인들은 위기감을 느낀다. 이제, 팔레스타인 땅을 두고 유대인과 아랍인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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